
은은하 목소리로 읽는 중

가을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도담이는 마당 가득 붉은 고추를 널었지요.
장에 가신 할머니가 부탁하고 가신 일이었어요.
오후가 되자 산 너머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먹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오고 바람이 서늘해졌지요.
“큰일이다, 비가 오겠어.”
도담이는 얼른 멍석 한쪽 끝을 잡고 당겼어요.
하지만 고추가 잔뜩 널린 멍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요.
두 손에 힘을 주고 다시 당겨 보았어요.
멍석은 조금 끌리다 말고 그대로 멈췄어요.
대신 고추만 몇 알 데구루루 굴러 떨어졌지요.
도담이는 그만 마당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그때 담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도담아, 거기서 뭐 해?”
옆집에 사는 친구 하늘이였어요.
“비가 오는데 멍석이 너무 무거워.”
하늘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어요.
그러고는 멍석 반대쪽 끝을 척 잡았지요.
둘은 서로를 보며 숨을 골랐어요.
“하나, 둘, 셋!”
멍석이 스르르 끌려 처마 밑으로 들어갔어요.
혼자서는 꿈쩍도 않던 것이 둘이 되니 가벼웠어요.
도담이는 눈이 동그래졌지요.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그런데 마당에는 아직 멍석이 셋이나 남아 있었어요.
툭, 툭.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어요.
바로 그때 담장 너머로 이웃들이 모여들었어요.
앞집 아저씨도, 뒷집 아주머니도, 골목 아이들도 왔지요.
모두 소매를 걷고 마당으로 들어왔어요.
여럿이 함께 드니 멍석은 깃털처럼 가벼웠어요.
고추는 한 알도 젖지 않고 처마 밑에 나란히 놓였답니다.
마당에는 웃음소리만 남았지요.
저녁에 돌아온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말했어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니, 우리 도담이가 알았구나.”
혼자서는 무거운 일도 함께 들면 가벼워진답니다.
가을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이었어요.